에너지 전문가 “AI·데이터센터 수요, 아세안 청정에너지 사업 투자 유치 이끌 수 있어”

제44차 아세안 에너지장관회의 계기로 전문가들 제언…“장기 전력 구매 약정이 재생에너지·송전망 투자 촉진할 것”. 회원국 장관들, 석유·가스·석탄 부문 메탄 배출 감축 위한 역내 협력도 촉구

AirTrunk
A hyperscaler data centre in Sydney, Australia. Image: AirTrunk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가 장기 전력 구매 약정으로 이어지면 동남아시아 재생에너지·송전망 사업의 금융 조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동남아시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4년부터 2030년 사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남부의 데이터센터 집적지가 이러한 수요 증가를 견인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각각 약 170%, 8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늘어나는 수요를 청정 전력으로 충당하려는 움직임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국가 간 전력 거래 확대 추진에 힘입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마닐라에서 열린 제44차 아세안 에너지장관회의에서는 개정·강화된 아세안 전력망 협정의 이행, 역내 전력망 계획과 다자간 전력 거래 확대, 해저 전력케이블 관련 체계 마련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다만 수요 증가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사업을 뒷받침할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업계 단체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의 앤 마그렛 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 담당 이사는 금요일 언론 브리핑에서 “AI와 신산업의 성장은 추가 전력 수요를 의미하며, 이 수요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며 “그러나 수요만으로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적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한편, 해당 산업의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격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제 싱크탱크 E3G의 러셀 마시 동남아시아 에너지 전환·기후금융 총괄도 같은 브리핑에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신규 사업 추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잠재력을 실제 투자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마시 총괄은 일부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내세운 배출 감축 공약이 사업 확장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에 본사를 둔 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에어트렁크(AirTrunk)는 2030년까지 자사 시설에서 소비하는 전력량 전부에 상응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에어트렁크가 재생에너지 개발사 ib vogt와 체결한 가상 전력구매계약(VPPA)을 기반으로 추진된 교류 출력 기준 29.99메가와트(MWac) 규모의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지난 7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신규 청정에너지 발전 설비 확충을 뒷받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MWac는 태양광 발전소나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설 등이 전력망에 공급할 수 있는 최대 교류 출력을 나타내는 단위다.

마시 총괄은 한국과 호주에서도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자에게 시설 구축과 함께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추가 발전 전원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부 국가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것이 현실화하면 신규 사업을 가시화하고 개발을 뒷받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재생에너지연합(Global Renewables Alliance)의 로버트 쿡 전력망 정책 담당은 같은 브리핑에서 AI의 확산을 전반적인 전력 수요 증가, 다른 부문의 전기화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쿡 담당은 전기화와 AI에 따른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지역별로 AI 관련 전력 소비 데이터의 일관성이 부족해 계획 수립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시스템 개발 방향을 정하고 재생에너지의 전력망 통합을 뒷받침하려면 더 나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에너지 시스템 개발 계획 수립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계획은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력망 통합, 각 부문의 AI 발전을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sean Minister's Meeting

제44차 아세안 에너지장관회의(AMEM44)가 10월 5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사진: 아세안

장관 공동성명에 석탄 감축 의지 담겨

아세안 에너지장관들은 목요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역내 전력망 연계 강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국가 간 연계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에 힘을 싣는 한편, 에너지 안보에서 석유와 가스가 수행하는 역할을 재확인했다. 석유·가스·석탄 부문의 메탄 배출을 줄이기 위한 역내 협력 강화도 촉구했다.

공동성명은 “효과적인 메탄 관리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며 아세안의 기후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석유·가스·석탄 부문의 메탄 배출 감축을 위한 역내 협력 강화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E3G의 마시 총괄은 석탄 부문의 전환과 아세안 전력망 구축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언급된 점을 환영하면서도 이번 논의에 대해서는 “성과와 한계가 엇갈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청정 전력을 활용한 전기화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화석연료 공급과 관련 인프라 확보에도 여전히 관심이 쏠렸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청정 전력을 활용한 전기화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날리사 디말란타 전 필리핀 에너지규제위원회 위원장 겸 최고경영자는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유지한 것 자체가 성과라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 20년 넘게 활동해 온 디말란타 전 위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필리핀 국가 재생에너지 계획을 수립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회고했다.

그는 “그 동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성과”라며 “이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디말란타 전 위원장은 공동성명이 아세안 에너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활성화를 지지한 점도 환영하며, 이를 보완할 국가별 데이터 포털 구축을 촉구했다. 그는 투명성을 높이면 투자 판단의 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에너지 부문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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